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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취업

말라위 생활, 그리고 유니세프 UNICEF 라오스 사무소에서 일하기까지... 시간이 멈춘 라오스에서의 시간여행 - 이름 : 김택수- 근무기구 및 부서 : UNICEF 라오스 사무소 보건 및 영양섹션- 직위 : Health Officer (2013-2015), Innovations and ICT-enabled(C4D) Consultant (2016 - )- 근무기간: 2013.12.24.-2015.12.23. (코이카 다자협력전문가) 2016.1.4.-현재 (컨설턴트) 꾸준히 잘 다니던 사기업을 그만두고 떠난 대학원 유학생활은 나의 삶의 여정의 궤도를 크게 바꿔주는 계기가 됐다. 과정을 마치고 1년간 현장 속에서 머물며 지냈던 말라위 생활을 거치면서 현장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졌고, 조금은 체계적으로 정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 더보기
중국취업이야기 | 토익점수에만 연연하던 내가 상하이 한진로지스틱스에서 일하기까지.. 스펙이란 울타리를 넘어, 세계 속으로이강산 [중국 | 한진로지스틱스 상하이 법인] ‘스펙’이란 울타리 속에 갇힌 나서울 소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학점과 토익 점수도 괜찮았으며 각종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내 ‘스펙’은 적어도 주변 사람들 말에 따르면 문제가 없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공채 시즌 동안 이력서를 얼마나 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자기소개서 편집하는 기술만 늘었다. 각 회사의 양식에 맞추어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복사, 붙여 넣기’했다. 비록 평소에 잘 몰랐던 업종이었어도, 자기소개서 안에서는 마치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척, 평소에 관심 있었던 척 거짓말을 써 내려갔다. 결국 내 이력서는 나의 증명사진만 떡하니 붙어 있는 하나의 소설책이 되었다. 운 좋게 서류 통과한 .. 더보기
인도네시아에서 일하기 | 한국드라마를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니 씨아빠? (이 사람이 누구예요?)김유경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 미디어 그룹] 이니 씨아빠? 이 사람이 누구예요? 미니 마트에 들러 물건을 사려고 돈을 건네니, 대뜸 사진 한 장을 보여주는 마트 직원. 내가 바이올린을 들고 있어서 그랬나, 여주인공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한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 사진이었다. 그 직원은 민망한 듯 나를 쳐다보며 이 사람이 정말 예쁘고 참한데 이름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종이에 여주인공의 실명을 써 주고, 발음을 알려 주었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뜨리마까시 바냑야” 너무 감사해요.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아차리고 물어본 것도 신기했지만, 나 역시 이제는 이런 질문이 번거롭지 않고 즐겁기까지 하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을 배우고 있다쇼핑몰에선 한국 노래가 나.. 더보기
인도네시아에서 의류회사 관리자로 일하며 스물여덟, 2천 명을 움직이다장은원 [인도네시아 | 최신물산] 나는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의류 벤더회사 생산 기획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다.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2천명을 전부 직접 관리하지는 않지만, 공장 내 모든 부서와 소통하며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했지만 졸업할 때까지 내 전공을 살려서 진로를 정해야 하는지, 혹시 다른 진로는 없는지 고민했다. 무작정 지원한 국내 기업에서 몇 번의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애매한 학점과 부족한 토익 점수 때문에 탈락했다. 이렇게 진로 고민으로 헤매는 와중에 섬유산업연합회와 주요 벤더 6개 기업이 함께 주최하는 에 지원하였다. 할 수 있을 때, 과감히 도전하라3개월간의 국내 사전 교육이 끝나면 3개월 동안의 해외 인턴 기간을 거쳐, 해외 의류벤더 .. 더보기
일본취업이야기 | 평점 2점대로 일본 대기업 입사하기 작은 도전을 시작으로 세계 일주와 해외 취업을 이루기까지윤혜정 대학교 3학년 말, 내 학점은 평균 2점 후반 대. 아직 명확한 꿈이 없던 대학 입시 시절, 성적에 맞는 대학과 학과 중에서 가장 취업률이 높은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했다. 전공이 적성과 맞지 않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어 시간만 보내다 보니 벌써 3학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4학년이 코앞에 닥치자 그때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더 늦기 전에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자.’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다 - 일본 워킹홀리데이내 미래를 향한 첫 터닝 포인트는 누구나 도전하는 워킹홀리데이. 다시 말해 해외 도피에서 시작되었다. 해외라고는 3일간의 일본 여행 경험이 전부였다. 네 달간 히라.. 더보기
호주취업이야기 | 호주에서 노인복지시설에 취업하기까지... “내 언어의 한계는 곧 내 세계의 한계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은 사람은 직접 그리고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을 토대로 표현을 하기에 언어적 한계는 자신의 지식,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난 이 글을 보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서 영어와 그 외 다른 언어들을 익혀서 글로벌 시대에 세상의 다양한 언어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난 영어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영어 회화 실력은 겨우 영어로 인사만 하는 정도였다. 내가 좋아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 학원을 등록하고 거의 1년을 다니면서 하루에 최소 8시간은 꼭 영어 공부에 투자하기로 결심을 했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처럼 영어 공부가 나의 일이.. 더보기
카타르에서 일하기 | 50도가 넘는 중동, 조선소 엔지니어로 일하기 열정의 땅 카타르에서 Global Engineer로 우뚝 서기 정재웅 [카타르|N-KOM 조선소] 세계무대 진출의 꿈을 꾸다현재 나는 카타르 최북단의 RLIC(Ras Laffan Industrial City)에 위치한 현지 조선소 Nakilat-Keppel Offshore Marine(싱가폴 조선소 Keppel 그룹과 카타르 가스운송회사 Nakilat의 Joint Venture)에서 Senior Project Engineer 직급으로 Project Manager 포지션에 근무하고 있다. 해외취업을 향한 과정은 정말 뜻하지 않게 시작 되었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항상 결혼을 통한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자 꿈꿔 왔다. 그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선 대학을 졸업하고 이른 나이에 대기업에 취업 하는 것이 최선의 .. 더보기
카타르항공 스튜어디스 이야기 | 30살 여자도 승무원이 될 수 있을까? 사막에 핀 꽃김민아 [카타르|카타르 항공] Chapter 1, 나, 길을 잃다“입학 등록을 취소하시겠습니까?”라는 버튼을 클릭해 버린다. 대학원 입학을 하루 앞둔 2014년 2월 28일 유난히 더 춥게 느껴졌던 것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아니라 갈 곳 잃은 나였다. 2005년도 전문대학 비서과를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비서로서 근무를 시작하며 비정규직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퇴직을 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21살 어린 나이에 느꼈던 불안함과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지방대학교를 나와 정규직으로 메이저 기업에 입사하여 안정을 찾는다는 것은 힘들었던 시기였기에 파견계약직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모두 누리며 긍정마인드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사회경험을.. 더보기
회계전공 부산촌놈, 베트남에서 해외영업 인턴으로 일하다! 베트남을 알다권동진 [베트남 | 신광비나 해외영업 인턴] 나는 군대를 제대할 때까지도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한 소위, 부산 촌놈이었다. 해외 경험을 하고 싶었지만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내게 벅찬 일이었다. 고민 끝에 해외 인턴에 지원하기로 하고 AIESEC이라는 국제 리더십 학생단체에서 주관하는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면접결과는 불합격. 하지만 주최 측으로부터 “적극적인 자세를 높이 사서, 3개월 뒤 다시 기회를 드리겠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3개월 후 나는 해외 인턴이 되었다. 나의 글이 해외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 베트남에서의 인턴생활나는 부산대학교 경영학부 회계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어학연수를 가고 싶었지만 늘 마음속 생각일 뿐.. 더보기
캐나다취업이야기 | 실업계고 출신인 내가 캐나다 식품유통 바이어가 되기까지. 반 발짝만 가더라도 앞으로만 가자!백레이 [캐나다 | 식품유통 바이어] 나는 불가능을 말할 때 ‘거의’와 ‘완전’ 다르다고 생각한다.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뜻이고 완전 불가능하다는 것은 1%의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실업계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년제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지방 4년제 대학 영문과로 편입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영어로 한마디 말도 못했던 나를 생각하면 지금 나의 해외 취업은 완전 불가능에서 시작된 것 같다. 다행인 것은 그 상황에서도 내 스스로 예외의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막연하게 생각하기보다 자신에게 맞춰 계획을 세운다면 해외 취업은 도전해 볼 만한 꿈인 것 같다. 12년의 준비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처음 꿈은 해외 취업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