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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취업 & 자격증/생생한 현장 이야기

호주취업이야기 | 호주에서 노인복지시설에 취업하기까지...

“내 언어의 한계는 곧 내 세계의 한계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은 사람은 직접 그리고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을 토대로 표현을 하기에 언어적 한계는 자신의 지식,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난 이 글을 보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서 영어와 그 외 다른 언어들을 익혀서 글로벌 시대에 세상의 다양한 언어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난 영어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영어 회화 실력은 겨우 영어로 인사만 하는 정도였다. 내가 좋아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 학원을 등록하고 거의 1년을 다니면서 하루에 최소 8시간은 꼭 영어 공부에 투자하기로 결심을 했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처럼 영어 공부가 나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학원 수업이 없는 공강시간에도 혼자 책상에 앉아서 영어 지문이나 영화 스크립트를 큰 소리로 따라 읽고 유용한 표현들을 익히고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중,고등학교 때 시험을 보기 위해 하는 영어공부가 아니라, 정말 실생활에서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중점을 두고 능동적으로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Reading, Listening을 할 때 유용한 표현들을 익혀서 어떻게 이것을 실제 Speaking 이나 Writing에서 활용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공부를 해왔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지났을 때 원어민들과 일상 회화정도는 가능하게 되었고, 1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는 영어로 토론을 할 정도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던 원어민 강사들과는 식사도 먹고 운동도 같이 하는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특히 아일랜드에서 온 Mark라는 나의 동갑 내기 친구와 가깝게 지냈는데, 그 당시 그 친구는 아프리카만을 남겨두고 세계를 일주 해왔다.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하는 이유는 아프리카에 갈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그 친구를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28년의 인생을 살면서 아직 한국 외에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 그리고 유럽, 남미, 북미, 아시아, 오세아니아 온 세계를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며 살아온 Mark 와의 만남은 내 삶에 있어서 터닝포인트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공부해온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 활용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해외취업 연수생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여러 교육 과정이 있었지만 그 중에 내 눈에 들어온 과정은 바로 호주에서 “Aged care” 관련 교육이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영어가 내 인생에서 날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왔었다.

호주에서 노인복지와 영어를 공부할 기회를 가지면서 멋지게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나의 전공인 사회복지와 좋아하는 영어를 호주라는 영어권 국가에서 발휘할 기회가! 연수기간 동안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호주에서 펼칠 나의 꿈을 그리며 즐기면서 교육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교육비를 제하고 호주에 내가 가지고 갈 수 있었던 돈은 단돈 200만원. 

많은 돈은 없었지만 나에겐 노인복지와 영어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호주에서 17주간 하루 8시간씩 강도 높은 학교 생활 그리고 수업 과제 제출과 영어 공부를 하면서도, 가진 돈이 얼마 없었기에 학교에 가기 전 새벽 3시부터 7시까지 하루 4시간 매일 펍에서 청소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이론 수업을 마치고 마침내 4주간의 실습이 시작되었다. 


보통은 학교에서 실습기관과 연계를 해서 학생에게 소개를 시켜주는데, 난 스스로 마음에 드는 실습기관을 찾고 싶은 마음에 Residents가 백 명 이상이고 Branch가 많은 규모가 큰 회사 (교육, 훈련이나 업무 시스템이 체계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집에서 통근 거리가 멀지 않은 시설을 찾던 와중에, 호주에 도착한지 한 달 여 정도 지났을 때 우연히 들린 Job Expo에서 알게 된 Mercy Place라는 Aged care facility를 발견하고 그곳 매니저인 Barry와의 인터뷰를 통과해서 실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은 1,2 층의 High care, Low care, dementia unit 뿐만이 아니라 3층에는 Resident에게 최고급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Deluxe unit까지 있는 꽤 규모가 큰 기관이었다.

직원 구성은 정말 다양했다. 호주 직원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특히 인도, 네팔 그리고 아프리카 계까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팀을 이뤄서 일을 하고 있었다.


High care나 Low care에서 일을 할 때는 그곳에서 지내시는 Residents와 커뮤니케이션이 큰 어려움이 없기에 그렇게 힘든 점은 없었지만, 처음에 Dementia unit에서 치매에 걸리신 어르신 분들과 일을 할 때는 의사소통이 좀처럼 이루어 지지 않아서 때론 힘들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분들의 행동이나 심리적 특성, Preferences를 파악하고 나니깐,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도 치매로 돌아가셨기에, 그 분들을 위해 일을 하면서 때때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려왔다.

 

4주간의 실습기관 동안, 나는 이곳에 일을 배우러 온 학생이라는 생각보다 이곳의 직원이라는 생각으로 Residents 한 분 한 분께 관심을 가지고 그 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 곳에 있는 간호사나 Personal carer들과도 좋은 관계를 가지며 항상 밝은 모습으로 대하였다. 실습이 끝날 때 즈음에는 그곳의 매니저로부터 Job offer가 왔고 실습이 끝난 뒤에는 그곳의 직원으로서 당당히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학교를 다닐 때 하지 못하던 외식과 쇼핑을 할 정도로 경제적 여건도 많이 좋아지고 앞으로 미래에 대해 불안했던 마음들도 사라졌다. 멜번에서 우연한 기회에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에서 주최하는 ‘차세대 무역스쿨’ 에 참여해서 멜번에서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난 호주에서 1년을 머무를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호주에서 공부와 일을 하면서, 호주라는 나라의 환경과 사회 시스템들을 접하면서 살기에 정말 좋은 나라라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서 좀 더 지내면서 나의 능력을 키우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우고 싶었기에 워홀 비자를 1년 더 연장하기로 결심하였다. 

체류기간을 1년 더 연장하려면 호주 지방의 1차 산업 (농업, 수산업, 광업 등)에서 3개월 가량을 일을 해야만 신청할 자격이 주어졌다. 지인을 통해서 서호주 Albany라는 곳에 있는 고기 공장 일을 소개받고, 멜번에서 정들었던 친구와 Mercy Place의 친절하고 따뜻했던 동료들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멜번에서 비행기로 5시간 그리고 퍼스에서 버스로 5시간을 걸쳐서 서호주 Albany라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도시생활과 또 다른 호주 전원생활을 만나게 되었다. 비자를 연장하는 필요조건인 3개월 동안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Aged care 관련 일을 하고 싶었기에 그쪽 일을 알아보던 중, 함께 살던 룸메이트의 추천으로 Baptistcare라는 Nursing home을 알게 되었다.

그곳 매니저와 연락이 닿아서 Resume와 Cover letter 그리고 관련된 자격증을 들고 가서 제출을 하고 며칠 뒤에 그곳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인터뷰 끝에 매니저가 Reference를 확인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해서 인터뷰 결과를 기다렸다. 멜번의 Mercy place에 있는 매니저 Barry로부터 나의 업무 능력에 대한 Reference 확인 뒤에 드디어 최종 합격 통보가 왔다. 평일에는 공장일 때문에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없었기에, 주말에만 Nursing Home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일주일 내내 일을 하는 것이 피곤할 법도 한데 주말에 Baptistcare에서 여러 다양한 Staffs과 Residents를 만나는 일이 너무 반갑고 즐거웠기에 밝은 모습으로 기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멜번에 있는 동료들과도 종종 전화나 메일로 안부를 전하면서 인연을 이어갔다. 특히 멜번에 일할 때 매니저였던 Barry와 연락을 하면서, 이 메일로 안부를 물으면서 보낸 Albany에서 나의 생활과 계획에 대한 글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Mercy Place의 CEO에게 나의 메일을 다시 전달했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감명을 받고 CEO에게 나의 메일을 전했다는 소식에 조금 놀랍기도 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1년 비자 연장을 위한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Nursing Home에서 주에 40시간 이상씩 일을 할 수 있었다. High care, Low care 그리고 Dementia unit등 다양한 unit에 순환근무를 하면서 여러 Residents를 알게 되고 Care를 하면서 기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업무의 폭도 넓어졌다. 크리스마스에 있는 기관에서 주체하는 한 행사에서 Residents를 위해 팝송을 준비해서 Residents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 Staffs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많이 숙쓰럽기도 했지만 행사 장에 있는 많은 분 들이 즐거워하시는 모습에 많은 보람을 느꼈다.


*출처: 월드잡 (www.worldjob.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