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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취업 & 자격증/생생한 현장 이야기

일본취업이야기 | 평점 2점대로 일본 대기업 입사하기

작은 도전을 시작으로 세계 일주와 해외 취업을 이루기까지

윤혜정

 

 


대학교 3학년 말, 내 학점은 평균 2점 후반 대. 아직 명확한 꿈이 없던 대학 입시 시절, 성적에 맞는 대학과 학과 중에서 가장 취업률이 높은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했다. 전공이 적성과 맞지 않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어 시간만 보내다 보니 벌써 3학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4학년이 코앞에 닥치자 그때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더 늦기 전에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자.’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다 - 일본 워킹홀리데이

내 미래를 향한 첫 터닝 포인트는 누구나 도전하는 워킹홀리데이. 다시 말해 해외 도피에서 시작되었다. 해외라고는 3일간의 일본 여행 경험이 전부였다. 네 달간 히라가나, 가타가나를 외우고 기본 문법만 겨우 익힌 내가, 일본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시작으로 세계를 한 바퀴 돌고, 하고 싶은 일도 찾아 일본 현지 대기업에 채용되었다. 3년 동안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진로와 취업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해 대학 3년을 마친 후 무작정 가까운 도쿄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활발하고 적응이 빠른 성격 덕분에 다행히 집도 잘 찾고 아르바이트도 잘 구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던 그때,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3·11 동일본 대지진이 터져버렸다. 내가 도쿄에 정착한 지 불과 한 달 만의 일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던 여진과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에 모든 외국인들이 자국으로 귀국했지만, 나는 귀국을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단순한 해외 도피로 떠난 것이었는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마음가짐을 많이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3년간 무의미하게 보냈던 대학 생활을 뉘우치고 그 3년을 보상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내 인생을 진지하게 대면하여 꿈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 모든 것을 백지로 만들 수는 없었다. 이대로 귀국해 버리면 되찾은 열정이 유리알처럼 깨져 버릴 것만 같았다. 돌아가 봤자 당장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결국 차선책으로 비교적 안전한 관서 지방으로 잠시 대피해 있다 일주일 후 조금 안정되기 시작하자 도쿄로 다시 돌아왔다.


함께 일하던 한국인들이 모두 귀국한 탓에 급하게 채용된 일본인들 틈에 섞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당시 기본적인 일본어도 모르던 나는 동료들과의 의사소통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답답해서 항상 사전을 지참한 채 하루에도 수십 번 사전을 이용하여 대화했고,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돌아가서는 그날 사용한 단어와 문장을 복습했다. 사람이 부족해서 하루 12시간씩 10일 연속으로 쉬지도 못한 채 당시 환율로 한 달에 350만 원 상당의 월급을 받을 정도로 일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돈을 벌며 공부까지 함께하는 느낌이어서 매일매일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진 후 두 달이 지나자 놀라울 정도로 일본어가 많이 늘었고, 몇 달 후에는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본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어학원에 갈 여유는 없었지만, 아르바이트 장소가 내 일본어 학원이었고 같이 일하는 일본인 친구들과 손님들이 내 선생님이었다. 


처음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고 2년이 채 되지 않아 JLPT 최고 레벨인 N1을 획득했다. 대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이뤘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11개월간의 일본 워킹홀리데이 생활에서 내가 가장 깊게 배운 점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에 돌아왔다면 아마 현재의 나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불안감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을 때, 나는 불안감에 맞서 포기하지 않고 무한히 노력했다. 부족한 언어 실력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웠고 문화의 차이를 수없이 경험하며 소외감마저 느껴야 했다. 하지만 혼자 외국인이라는 외로움이,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두 배 세 배 공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큰 위기일수록 큰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잃어버렸던 열정도 되찾았다.


5대양 6대주 세계 일주에 도전하다 - 1,500만 원으로 12개월간 세계 일주 도전기

워킹홀리데이 후 되찾은 열정으로 하루하루가 알차고 행복해졌지만, 아직 취업을 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로 나가기 전에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좀 더 많은 것에 직접 부딪쳐 경험해 보고 싶었다. 큰 용기를 품고, 일본에 다녀오기 전에는 전혀 현실성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세계 일주를 결심했다. 


세계 여행을 이미 다녀온 비슷한 나이 대의 일본인 친구들을 만나 본 후라 나도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고,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모아 온 1,500만 원이 1년간 여행 경비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동이 가능한 루트를 짰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인도를 거쳐 네팔로 올라가 비행기를 타고 이란으로 이동한 다음 그곳에서부터 다시 육로와 배를 이용하여 유럽, 북아프리카를 지나 비행기로 남미에 닿는, 총 31개국을 도는 일정이었다.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모험을 좋아하고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계로 떠날 수 있다. 인터넷에는 정보가 넘쳐나고, 여행지에는 여행자들이 넘쳐난다. 세계 각지에서 너도나도 배낭여행을 떠나 미지의 세계에 발길을 뻗치는데 우리가 도전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특히 안전하기만 하다면, 아직 사람들이 많이 가 보지 못한 곳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나도 이란에 가 보기 전에는 이슬람과 중동에 대하여 상당히 무서운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지만, 직접 가 보니 어느 나라보다 친절하고 평화로운 나라였다. 그 이 외에도 이미지만 그려 봤던 나라에 실제로 가 봤을 땐 많은 문화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더 많이 배우게 되고 더 많이 성장하게 되는 긍정적인 충격이었다. 봉사 활동이나 인턴십도 좋고, 배낭여행도 좋다. 기간 또한 상관없다.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일 년이든 더 젊을 때 배낭 하나 짊어 메고 멀리 떠나 보면 생각보다 많은 만남과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K-Move 코트라 취업박람회 참가를 시작으로, 일본 인기 대기업에 채용되기까지 

첫 직장은 일본에서 찾기로 결정했는데, 일본 취업의 경우 한국과는 다르게 스펙보다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전공과 무관하게 지원을 할 수 있어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를 폭넓게 찾을 수도 있었다. 나는 다양한 일본 기업에서 한국 인재를 뽑기 위해 본사 인사부를 직접 한국에 파견하는 <코트라 일본 글로벌기업 채용박람회> 일정을 맞추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전에 이력서를 보내 박람회 현장에서 6곳의 회사로부터 1차 면접 기회를 받았다. 

그러나 꼭 합격하고 싶다는 간절함에 오히려 지나치게 긴장하는 바람에 6번이라는 기회를 모두 놓쳐 버렸다. 비록 대망의 첫 출발이자 큰 기회였던 코트라 취업박람회에서 좋은 결과는 얻지 못하였지만 취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출발선이 되었다.

또 다른 일본 기업 취업박람회가 2주 뒤 서울에서 주최되었고, 다행히 이번엔 일본 최대의 전기전자기기 제조업체 계열사 H사의 서류 전형, 1차 면접, 2차 면접에 모두 합격했다. 코트라 박람회에서 힘들었던 경험들이 나를 강하게 만들고 지탱해 준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뒤인 7월, 도쿄 본사에서의 최종 면접이 잡혔다. 


꼭 가고 싶던 회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 뛸 듯이 기뻤지만, 한편으론 면접에서 지나치게 긴장하는 내가 과연 최종 면접에서 합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 미래는 오직 그 면접에만 달려 있다는 압박감이 최종 면접을 망칠 것만 같았다. 그래, 일본에 가는 김에 다른 회사에도 도전해 보면 되는 거야. 마음을 고쳐먹고 차분히 면접 날을 기다렸다.

일본에서도 큰 취업박람회가 비슷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열렸다. 

6월 21일, 22일에는 도쿄, 25일, 27일에는 오사카, 바로 28일, 29일에는 다시 도쿄, 30일에는 또 다시 오사카로 이동하며 모든 박람회에 참가했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는 것도 아닌 외국인이 나처럼 직접 일본까지 와서 이렇게까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취업 활동을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았지만, 한정된 기회와 시간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경비 절약을 위한 잦은 심야버스 이동과 면접에 대한 부담감, 긴장감, 그리고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결과로 지쳐 가던 체력과 정신을 힘겹게 지탱하던 중 드디어 가장 가고 싶던 K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일본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많아 면접 기회를 받은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했던 곳인데 1차 면접, 2차 면접, 테스트에 모두 합격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7월 8일 같은 날에 오전에는 K사의 최종 면접이, 오후에는 한국에서 예정되었던 H사의 최종 면접이 잡혔다. 결전의 날. 긴장으로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안고, 결과가 어떻든 후회가 없을 만큼 즐겁게 면접을 보았다. 면접이 끝난 후 강하게 느꼈던 점 하나는 내가 서울, 도쿄, 오사카를 왔다 갔다 하며 힘들게 면접을 보았던 경험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고생한 경험들은 내 피와 살이 되었고, 그렇게 긴장을 하던 면접에도 어느새 강해져 있었다. 긴장하는 성격은 바꿀 수 없었지만, 면접에 익숙해지고 노련해지고 유연해졌다. 책에서 배워 머릿속에는 있었어도 실전에선 전혀 발휘할 수 없었던 면접의 기술은 실제로 부딪쳐 경험이 쌓인 뒤에야 우러나올 수 있었다.

K사에서는 면접 당일, 합격 통보가 왔다.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고민하지도 않고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며칠 뒤 H사에서도 합격 통보가 왔지만, 원래 결정대로 K사에 입사하기로 했다. 그렇게 내 운명의 첫 직장 K사를 만났다. 나는 토익 점수도 없이 일본 인기 기업 순위에 항상 꼽히는 대기업에 2015년 유일한 외국인 신입 사원으로 합격했다.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취업 준비생들에게

우리나라는 고학력자가 넘쳐나지만 기업 신입 채용의 문은 한정되어 있고, 공무원 시험 경쟁률도 엄청나다. 

모두가 같은 목표만 보고 경쟁하니 경쟁이 과열화되어 학력은 점점 높아지고 토익, 토플, 토스, 오픽, 각종 자격증 시험, 준비할 것이 더 많아진다. 사람마다 잘하는 것은 다 다른데 왜 우리는 일관화된 스펙에 맞춰 취업과 미래를 준비하는 걸까? 왜 영어를 쓸 일이 없는 직무에 취업을 하는 데 토익 점수가 당연한 듯 필요한 걸까?


일본 회사가 신입 사원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이미 쌓인 스펙이 아닌 앞으로 회사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역량과 가능성이다. 물론 다양한 경험은 필요하다. 그로 인해 무얼 배웠고, 그 경험을 살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포부가 확실하고 열정을 보여 준다면, 그것만으로 인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다른 국가의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세계는 넓다. 요즘은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도 교환 유학, 정부 지원 국제 교류 프로그램, 기업 지원 해외 봉사, 인턴십, 워킹홀리데이 등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하다.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에 그것을 활용한다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진다. 단순히 남들에 뒤처지지 않는 스펙을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꿈, 커리어를 찾기 위해서 다양한 기회들을 이용했으면 좋겠다.

또한 생각만 해본 것과 실제로 겪어 보는 것은 차이가 꽤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분야가 있다면 먼저 행동을 해봐야 한다. 처음부터 큰 도전도 좋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해도 좋다. 나도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만 해도 세계 일주를 할지 몰랐고, 세계일주를 출발할 때도 일본에서 취업하게 될지 몰랐다. 먼저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을 찾기 어렵다면, 일단 관심이 있는 일에 먼저 작게라도 도전해 보자. 그렇게 충실히 노력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성장해 있을 것이고, 예상치 못한 순간 꿈을 찾게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세계를 무대로 하여 자신의 꿈을 크게 설계해 봤으면 좋겠다. 남들 모두가 바라보는 곳에서 눈을 살짝 돌려 시야를 조금만 넓히고 조금만 용기를 내어 도전하기 시작하면,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직장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월드잡 (www.worldjob.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