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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책 속 밑줄긋기

철학 추천도서] 나의 눈 -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을 여는 법

핵심 한 문장,

하드웨어는 컴퓨터를 통해 가동되는 소프트웨어에 물들지 않으며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서 들어오는 영상에 영향 받지 않는다.


나의 눈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는,

마더 테레사가 상찬한 세계적인 영적 스승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영적으로 진화한 상태와 의식 연구 및 참나로서의 신의 현존에 대한 각성이라는 주제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는 1952년부터 정신과 의사로 일했으며, 인간 경험을 의식 진화의 관점에서 재맥락화하고 마음과 영, 양자에 대한 이해를 생명과 존재의 기층이자 지속적 근원인 내재적 신성의 표현들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강연 활동과 저술 활동을 펼쳤다.





책 속 밑줄긋기


p69. 중요한 것은 가르침이지 스승이 아니다. 그 가르침이 스승 개인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므로 개인을 우상시하거나 숭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런 정보는 스승이 그것을 선물로 받았으므로 선물로서 전해진다. 그런 정보는 신이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내려 준 선물이므로 팔거나 강요하거나 통제하거나 대가를 요구할 여지가 전혀 없다.


p81. 모든 사람의 의식 속에서 아이의 순수함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교란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것은 의식 자체의 본원적인 ‘구조’다. 실생활에 비추어 얘기하자면, 하드웨어는 컴퓨터를 통해 가동되는 소프트웨어에 물들지 않으며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서 들어오는 영상에 영향 받지 않는다.


p87. 아이는 프로그램화되지 않은 의식의 순수성을 갖고 태어나지만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집어넣어 주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조직적으로 프로그램화된다. 하지만 이런 체제는 한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의 진위를 가리는 데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다.


p104. 영적인 성장은 그것을 자유의지와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을 토대로 삼고 있으므로 모든 이들은 스스로가 선택하는 세계만을 체험한다. 우주에 희생자란 절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사건들의 결과는 내적인 선택과 결정의 표현이다.

필연적인 운명이 지체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우리가 ‘낮은 힘’ 혹은 환상과 거짓으로 표현해 온 에너지 장들이 끌어당기는 탓인 듯하다. 이런 끌어당김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자아를 몸과 동일시하는 것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생존의 두려움이다.


p105. 체스나 체커 게임에서 말들은 이튿날 다시 사용하기 위해 판에서 치워지기만 할 뿐 실제로 파괴되진 않는다. 에고는 경기 참가자들과 관전자들에게 아주 실감나는 것으로 보이는 전투에 몰입한다. 그런데 어떤 수준에서는 경기 참가자들이 꼭 배워 둘 필요가 있는, 모두에게 유익한 교훈을 실연해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인 도움을 준다. 용기에서 나온 행동들은 궁극적인 앎에 이르는 데 꼭 필요한, 영혼이 지닌 내재적인 힘을 일깨워 준다.


p107. 자기 자신을 포함해, 생명 그 자체의 표현인 모든 생명체에게 예외 없이 부드럽고 온화하고 따듯하고 너그럽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자세로 대하는 편을 택하라. 모든 생명체에게 사심 없이 봉사하고 사랑하고 존중하고 존경하는 일에 집중하라.


p109. 인간사의 세계에서 자신이 목격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특정한 조건들하에서 특정한 개인들을 통해 표현하고 작용하는 의식의 에너지 장들의 실연이므로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사람들이 지금과는 다른 사람들이 ‘될 수도 있었다’라는 식의 가설적 위치성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그들이 실제로 자신 아닌 다른 사람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면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제약들은 가능성의 범위를 한정하며 따라서 그런 가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실상이 아니라 상상이다. 인간의 행위를 가설적인 이상과 견주어서 비판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일이다.


p111.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은 자신이 임종의 자리에 누워 있는 모습을 그리면서 그 순간에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할지 물어보는 것이다.


p112.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강압적인 방식이나 멱살잡이가 아니라 훌륭한 모범이다. 우리는 말이나 자기가 가진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존재로서 타인들에게 영향을 준다. 


p126. 진화는 부정적인 것을 정복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것을 선택하고 수호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p142. 모든 목적은 완전히 성취되었고 모든 갈망 역시 충족되었다. 참나는 바라는 바가 없고 결핍과 갈망으로부터 자유롭다. 참나는 그것이 모든 것이라는 사실로 인해 모든 것을 이미 갖추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일 때 어떤 결핍도 가능하지 않으며 어떤 할 일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생각할 만한 생각도 없다. 써야 할 마음도 없다. 


p145. ‘나me'가 아니라 자체의 발전기에 의해 작동하는 하나의 ’그것it‘이 된다. 그것은 자체의 습관과 스타일들, 좋고 싫은 것들을 갖고 있으나 그런 것들은 더 이상 참다운 의미에서의 중요성이나 가치를 가진 것들이 아니며 행복하거나 불행한 결과들을 낳지 못한다. 


p167. 사실상 모든 것은 그 어떤 외적인 원인도 없이 저절로 일어나거나 발생한다. 모든 것과 모든 사건은 주어진 어느 순간의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전체성이 나타남이다. 모든 것은 그 전체성 속에서 볼 때 언제나 완전하고, 어떤 것도 그 어떤 방식으로든 변하기 위해 외적인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에고의 위치성과 제한된 범위의 관점에서 볼 때 세상은 무수한 것을 개선하고 바로 잡아야 할 필요가 있는 곳인 듯하다. 이런 환상은 한갓 망상에 지나치지 않는다.

실상에서 모든 것은 그 본질의 고유한 운명을 자연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그렇게 하는 데 어떤 외적인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p169. 그 어떤 사람의 에고나 신념체계도 사회에 아무 이익을 주지 못한다. 세상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불완전한 것도 아니고 도움이나 교정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데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면 세상의 모습이 자기 마음의 투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장애들을 빚어내는 마음의 또 다른 습관은 논쟁과 의심의 원천이 되는 가설을 빈번히 사용하는 것이다. (...) 그 가설적인 주장에 내재된 무의식적인 묵표는 언제나, ‘옳은’ 입장에 서서 다른 관점들을 논박하겠다는 허영심 어린 것이다. (...) ‘이러저러하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식의 가정은 위치성의 자기 정당화라는 동기를 내포한 상상과 말장난이 빚어낸 허구이므로 영적인 작업에서는 결코 다룰 것이 못된다. 


p173. 연쇄적인 사건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면밀히 조사할 경우 우리는 그 사건들이 사실상 표면적 현상들의 연쇄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한 표면적 현상들의 연쇄는 시간과 공간 내에서 한 시작점과 한 끝점을 임의로 선택한 탓에 만들어진다. 인과관계는 추상적인 개념이며, 모든 추상적 개념이 다 그렇듯이 그 어떤 본질적 실체도 갖고 있지 않다. (...) 우리는 단지 조건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하나의 분명한 예는 우리는 다만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출발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사건들’의 선행 조건이 원인이 아니라 특정한 필요조건이라 말할 수 있다.


p180. 영적인 헌신은 단지 세속적인 삶을 새로운 맥락하에 놓아야 하고 새롭게 재건해야 하며 종래와는 다르게 그려야 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덫이 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집착이나 진리에 대한 참구를 가리는 자신의 관찰들이다. 우리를 유혹하는 어떤 것들은 단지 시간만 낭비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나 어떤 것들은 자각하지 못할 경우 우리를 매몰시키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심각한 덫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맨 밑바닥까지 전락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더 나은 선택지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길을 잘못 들어 혹독한 고뇌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어떤 특정한 길을 따르는 것을 잘못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그 특정한 길이 고통스러운 길이 되는 동시에 궁극적인 구원의 수단이 되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