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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취업 & 자격증/생생한 현장 이야기

범죄프로파일러 배상훈 교수가 말하는 프로파일러의 세계

범죄자의 마음을 꿰뚫는 범죄해결사 

범죄자가 아니면서도 항상 범죄를 생각한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그러나 범죄자를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은 흉악한 사건과 미해결 사건으로 넘쳐날 것이다. 풀기 어려운 사건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범죄자의 심리를 연구하는 프로파일러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이제 겨우 20여 년. 그 시작점에 지금은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는 1기 범죄프로파일러 배상훈 교수가 있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처럼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가 한 명은 범죄자로, 한 명은 경찰이 되어 극적으로 만나는 소재의 영화는 드물지 않다. 이런 영화를 보면 의문이 든다. 똑같은 청년기를 보냈는데, 왜 한 명은 범죄자의 길로, 다른 한 명은 경찰이 된 것일까? 범죄자   DNA는 타고 나는 것일까? 사연에 따라 각자 걸어온 인생의 경로도 다르고, DNA와 같은 인류적 차원에서의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범죄자와 경찰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범죄자를 쫓는 경찰은 범죄자가 어떤 과정을 밟아, 어떤 심리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 뒤를 철저하게 파고들어야 세상에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사고의 범인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를 수사하는 직업 중 사람의 심리(?)만을 철저하게 따라가는 직업이 있다. 

바로 프로파일러다. 

이제 우리에게도 프러파일러라는 직업은 낯설지 않다. 지난해 연예란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시그널>은 물론 다니엘 헤니가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크리미널 마인드 : 국제 범죄수사팀> 같은 미국 드라마 외에도 프로파일러를 주인공으로 하는 추리 소설, 영화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프로파일러란 직업이 생긴 것은 2000년 초반으로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외국에 비해 역사가 무척 짧은 편이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프로파일러도 30여 명 남짓으로 벌어지는 범죄에 비해 그 수가 무척 적다(미국도 프로파일러의 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런 인원으로만 보더라도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얼마나 극한을 향해 달리는지 짐작하게 한다. 


배상훈 교수는 2004년 경찰청 범죄분석 1기 범죄심리분석관에 채용, 척박했던 프로파일러의 시대를 연 세대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파일러라고 하면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심리학만을 전공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과, 심리학과, 범죄학과 등을 전공하면 유리하긴 하지만, 특별한 자격증이나 전공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프로파일러는 폭넓게, 또 깊이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일단 현장에 투입되면 다방면에서 박사급 이상의 지식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프로파일러는 형사와 별도로 지방청마다 5~6명씩 행동과학팀으로 구성되어 일하는데, 혈흔 패턴을 분석하거나 지리적 프로파일링을 하는 사람, 면담만 맡는 사람 등 각자의 전공을 살려 일한다. 

배상훈 교수의 특이한 이력도 눈에 띤다. 

고려대학에서 화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근무하며 사회적으로 평화롭고 안정적인 길을 걸어가다 뜻하지 않은 일을 겪게 되면서 문화인류학과 사회확을 공부하게 되고, 부수적으로 범죄 스터디를 하다 교수에게 조언을 받아 프로파일러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배상훈 교수는 자신의 전공을 발휘해 사건 현장에 떠도는 냄새를 이용하는 아이디어를 통해 범인 검거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지문처럼 체취는 사람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절도, 뺑소니, 사기 같은 단순한 사건보다 프로파일러는 ‘연쇄살인(시리얼킬러)’, ‘연쇄방화’, ‘연쇄성범죄’ 같은 풀리지 않은 어려운 사건을 범죄를 재구성하고 분석하며, 범죄자의 뒤를 쫓는다. 


범죄는 시간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프로파일러에게는 밤낮이 없다. 경찰이나 과학수사대보다 먼저 현장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자다가도 뛰어나가야 하는 일은 다반사다. 

하루같이 사체를 보는 것이야 억울한 피해자를 생각하면 금세 적응하고 넘어가는 과정이지만, 끔찍한 현장을 매일같이 누비며 강력 범죄를 다루는 프로파일러들의 직업병이 ‘방광염(한번 범죄자가 입을 열면 몇 시간이 지나도 결코 중간에 끊어서는 안 된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며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입을 다물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라고 하는 ‘웃픈’ 사실은 직업의 고달픔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반증이 아닐까. 


배상훈 교수는 현재 현직에서 물러나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프로파일러를 양성하고, 각종 방송과 강의 등으로 프로파일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알려주기 위해 활동 중이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엘리트로 인정받는 길과 은퇴 후의 안락한 삶을 포기한 그의 행적에서 프로파일러라고 하는 직업의 고뇌가 엿볼 수 있다. 


물론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의 특성이 부정적인 측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로파일러는 범죄자를 잡는 것뿐만 아니라 범죄를 예방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연쇄 살인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드문 것도 프로파일러들이 범죄를 분석한 데이터를 토대로 예비 범죄자들을 관리 감독하기 때문이다. 

범죄도 암 덩어리처럼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자라난다. 

몰카범이나 바바리맨 같은 경범죄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성범죄자로 변모해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거에는 방치했던 예비 범죄자를 추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프로파일러들이 관리하고 차단하는 것이다. 

은퇴 이후의 삶도 지루하지 않다. 프로파일러는 ‘경험’의 축적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지혜는 쌓여가고, 그 경험과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선순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상훈 교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범죄자를 잡기 위해 가장 몰입했을 때였다고 한다. 연기자 중 역할에 심취해 무대(혹은 촬영)가 끝나고 난 후에도 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소위 말하는 메소드 연기다. 맡았던 역의 영향으로 가족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혼자 괴로워하거나 심한 경우는 자살하기도 한다. 프로파일러도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범죄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해보아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거울을 보면 괴롭죠. 그 안에 범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입장에서 범인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라는 배상훈 교수의 말에서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을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사람을 분석하는 일이다 보니 자신을 이해하는 친구 이외에는 사람들이 꺼리는 경향이 있어 외로움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는 직업이기도 하다. 


이런 혹독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나 영화만을 보고 프로파일러를 동경해서 배상훈 교수를 찾는 학생들이 많다. 이럴 때 배 교수는 10명 중 9명은 타일러서 돌려보낸다. 하지만 그중에서 진심으로 프로파일러가 되기를 원하는 학생에겐 배 교수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고자 한다. 

“현실에서의 프로파일러는 영화와 달라요. 정말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 범죄를 당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진정으로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프로파일러가 되기란 쉽지 않다. 

프로파일러는 1년에 평균 5~6명 정도밖에 뽑지 않는다. 

실례로 2015년에는 외국에서 범죄학을 공부한 사람과 형사 한 명, 이렇게 해서 총 두 명밖에 뽑지 않았다.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해서는 심리학, 사회학, 범죄학 세 가지 과목 중 하나의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한 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박사 이상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할 정도로 다방면의 지식을 요하는 직업이다. 

또한 전문지식 외에도 봉사성, 도덕성, 준법성 같은 인성적 측면도 중요하게 본다. 

경찰이 되어 경찰청에서 뽑는 비정기적 프로파일러 선발(특채)에 응시하는 방법도 있다. 어느 것이든 만만하지는 않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선명한 판단을 내리는 지성인이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나쁜 기운에 둘러싸여 있어야 하기에 프로파일에게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는 물론, 자신을 이겨내는 강한 힘, 그리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강한 의무감이 요구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라고 한 독일 철학자 니체의 말이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출처:  워크넷 (www.work.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