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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취업 & 자격증/생생한 현장 이야기

네팔해외봉사활동 후기| 마차카포리에서 30일을 돌아보며..

마차포카리에서의 30일,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다. (차유송/네팔)




월드프렌즈 ICT 봉사단으로 선발되어 네팔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지낸 한 달은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바꿔놓은 시간이자 내가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내 나침반이 되어줄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나에게 부모님 없이 외딴 곳에서 나와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온전히 내보이고 게다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것은 막중하고 꽤나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환경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자라왔던 내가 보기에 내가 파견되었던 Bal Batika 국제학교가 속한 마차포카리는 모든 면에서 열악하고 낙후된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고 밝았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 우리가 묶고 있는 5층으로 와 문 틈새로 고개를 집어넣어 우리 팀원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고 가끔은 우리를 살짝씩 건드리기도 했다. 

마치 우리가 유명 인사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은 우리를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봤고, 우리가 조그만 행동이라도 하는 것을 신기해했다. 눈썹 사이에 빨간 점을 찍은 아이, 네팔의 여신인 쿠마리처럼 눈 화장을 한 아이, 손등과 손바닥에 신비로운 문양을 그린 아이 등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자신을 특징짓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들은 아이들의 밝고 순수한 웃음과 함께 섞여 나로 하여금 더욱 큰 기대감과 희망을 가지게 했다.


봉사는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다.


우리가 짐을 푸르고 학교 시설에 익숙해지자 주말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화요일에 되어 첫 수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에서 계획했던 것을 모두 진행할 수는 없는 환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 준비해 온 것들 중 몇 가지는 아예 활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스케줄을 짜고 수업 자료를 준비했다. 그리고 첫 수업으로는 간단한 한국어 배우기 수업을 진행했다.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 첫 걸음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네이버와 구글을 활용해 나도 간단한 네팔어를 익혔고, 익숙해질 때까지 발음을 연습했다. 

그리고 한국어, 네팔어, 영어가 적힌 형형색색의 PPT 슬라이드를 준비하였다. 원래는 한글 동영상도 보여주려고 생각하였으나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인터넷 속도였다. 


가기 전 받은 학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속도는 느리긴 하지만 아예 사용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 가보니 유투브 동영상 1분짜리도 재생할 수 없는 환경이었고, 게다가 수업시간과 겹친 긴 정전시간은 수업 도중 인터넷을

아예 쓸 수 없게 하였다. 잦은 정전과 느린 인터넷 속도는 그 이후에 있었던 어느 수업에서건 간에 문제가 되었다. 또 다른 문제점은 KIV에서 제공받은 스마트빔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수업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주로 오전과 낮 시간대였다. (아이들이 3시가 되면 하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대에는 강한 햇볕이 내리쬐었고, 어떤 교실에도 커튼이 없었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빔은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25명 정도의 우리반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준비한 화면을 보여주어야 했고, 그랬기 때문에 아이들의 집중도가 떨어졌다. 첫 수업은 내 기준으로 완전히 실패였다. 그리고 첫 수업을 망쳤다는 생각에 그 날은 하루 종일 너무나 우울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그토록 속상했던 이유는 ‘절박함’ 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 달 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것 때문에 나에게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분일초가 소중했고 ‘다음 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었던 것이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만은 않다는 것과 한 달 후에는 무조건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덕분이었을까, 그 이후의 수업부터는 25명이라는 인원수, 그리고 스마트빔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환경을 고려한 최선의 수업을 구상하였고 수업 시작 한참 전 교실을 둘러보며 그날의 책상 구조에 가장 적합한 수업 방식을 머릿속으로 미리 그려보았다. 

수업 환경 자체는 매우 열악하지만 반 아이들 25명 모두가 까르르-웃으며 좋아하는 즐거운 수업을 만들 수 있었고, 중반부에 이르자 현지 코디네이터 선생님이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며 수업을 매일 하는 것으로 바꿔도 되냐고 부탁하실 정도였다.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나도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에 흔쾌히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수업의 횟수가 급격하게 늘어남에 따라 한국에서 준비해온 물품이 부족하여 현지에서 여러 가지 준비물을 급하게 준비해야 했고 새로운 수업을 준비하느라 새벽에 자기도 했지만, 이는 그에 따른 결과와 결코 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최선의 수업 방식을 고민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잘한 점과 개선할 점을 떠올리면서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봉사를 한다는 것은 나의 재능 또는 시간 등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이에게 주는 것이지만, 그것이 잃음 (마이너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아이들과 소통하고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나는 아이들로부터 감동과 고마움을 받는 것을 통해 봉사는 플러스로 한없이 수렴하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의 삶의 일부가 된다는 것, 나의 한 달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아이들과 학교를 위해 바쳤던 것은 나의 존재를 가장 가치 있게 만들었던 귀중한 경험이었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와 버렸기 때문에 연락을 주고받는 것 외에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해 줄 수가 없다. 이렇듯 봉사활동은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무엇인가를 더 주고 싶어도 더 줄 수가 없기 때문에 봉사를 하는 그 순간에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출처: 월드프렌즈 ICT 봉사단 (http://kiv.ni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