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이던 1999년에 처음 경기대학교에 왔어요. 돌아보면 그게 제가 범죄심리학자의 길을 걷게 된 가장 결정적 계기였던 것 같아요. 당시 교양학부에 심리학 교수 자리가 나서 지원했는데 뜬금없게도 교정학과 연구를 위해 채용됐어요. 


당시만 해도 사회 분위기상 국내 대학에서 여자를 교원으로 채용하는 일이 드물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국내 대학 중 교정학과가 개설된 곳은 흔치 않았는데, 교정학과는 바꾸어 말하면 교도소 학과예요. 교도 행정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끔 토대를 만들거든요.


예를 들어 범죄자를 수감할 때 범죄자의 특성이나 죄질에 따라 어느 정도 수준의 보안 등급을 가진 교도소로 배정할 것인지, 또 보안 등급에 따라 각 교도소를 어떻게 운영할지 가이드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이를 판단하고 적용할 만한 기준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던 중 한 교정학과 교수님께서 범죄자를 분류할 때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법무부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었고, 제가 그 연구를 함께 하는 공동 연구원이 됐죠. 미국에서 심리측정을 공부하다 막 귀국했을 때니 그럴 만도 했을 거예요.


그전까진 심리학을 공부했어요. 국내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89년에 온 가족이 함께 미국으로 떠났고요. 보다 심도 있게 공부하기 위해 결심한 미국행이었지만 남편 직장이나 아이들 교육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주부였던 터라 가족들 상황에 맞춰 세 개 대학을 옮겨 다니며 '심리측정' 분야 연구를 계속했어요. 이 분야는 감각이나 능력, 성격 또는 기호와 같이 직접적으로 관측할 수 없는 심리학적 구성 개념을 측정하는 방법론이에요. 즉 학교 입장에선 해당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데 꽤나 적합한 인력을 찾았던 셈이죠. (웃음)



범죄심리학자 이수정의 추천도서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유명한 일본 소설가예요. 데뷔 이후 꾸준히 '악'이라는 일관성 있는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죠. 작품의 소재도 주로 살해, 사형수, 폭력, 공포와 같은 것들이죠.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악'이라는 개념에 대해 가장 근본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보다 더 악한 괴물이 돼야 하는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다 보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돼요. 산다는 건 대체 뭘까요.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살인 동기가 정말 이유 같지 않아요. 사실 범죄를 연구하기 전까지 제게 있어 이 책은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끔 가공한 하나의 픽션'이었지만 범죄심리학자가 되고 다시 읽었을 땐 정말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어요. 아주 순간적이고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의 감정과 항변을 서술하고 있으니까요. 흥미로운 건 실제 살인사건에서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타인과 무관하게, 그저 내가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는 거죠. 어쩌면 인간의 이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대단한 힘을 갖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인간의 존재 의미나 가치 체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에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존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찾아가는 책이에요. 인간 본성에 관한 연구는 범죄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선 굉장히 필수적인 부분인데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인류 초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왔고 그 폭력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자연스레 들여다보게 돼요. 과거 역사에서 드러난 고문이나 학살부터 오늘날, 이유를 알 수 없이 행하는 '묻지 마 살인'까지 인류사 속 범죄의 현장을 읽노라면 역시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대체 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죠. 그게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물꼬를 틔워줄 거라 생각해요. 

톨스토이는 본래 굉장한 원칙주의자였대요. 아주 저명한 작가이자 사회에 파급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결국 생의 말미에서 이 같은 책을 출간하며 본인의 인생을 돌아봤다고 해요. 살아가는 동안 본인이 강력하게 믿고 주장했던 부분들에 대해 다 맞는지 회의가 든다는 이야기 속에서 자기반성적 태도를 느낄 수 있어요. 우리 모두 나름대로의 신념을 갖고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으며 살지만 실은 진짜 맞는지 아닌지 반성할 시간은 부족한 것 같아요.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잖아요. 내게도 정직하게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질문을 던지게 해준 좋은 책이에요. 

'폭력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학술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특히 인간 뇌와 기능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는 게 특징이죠.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인간은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닌 생물학적 존재요, 욕망의 노예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정말 나약한 것이 인간이죠. 어쩌면 무가치할 수도 있는 하나의 '존재'에 불과할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는 인간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게 범죄를 발생시키는 또 하나의 원인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네이버 지식백과]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지식인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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