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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유명인들의 추천도서

알쓸신잡 베스트셀러 소설가 김영하의 추천도서

요즘 알쓸신잡에서 박학다식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소설가 김영하.

2013년에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인터뷰 한 내용이 있어 일부분 발췌하여 소개드립니다.


서재에 들어가면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책이라는 것은 지금 것이 아니잖아요? 책은 제 아무리 빠른 것이라도 적어도 몇 달 전에 쓰여진 것이거든요. 더 오래된 것은 몇백 년, 몇 천 년 전에 쓰여진 것이고요. 그래서 서재에 들어간다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목소리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적어도 호메로스 같은 경우에는 2000년 이상을 살아서 우리에게 와있는 거잖아요. 그런 목소리들을 듣는 시간이라서 거기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서재 안에서는 음악도 거의 듣지 않아요. SNS라든가, 메신저 같은 다른 성질의 목소리들이 틈입해 들어오지 않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제 서재에는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가 하나 있어요. 그 의자에 앉아서 삼면으로 둘러싸인 서가에서 책을 뽑아 읽죠. 쉽지는 않지만 읽고 있는 동안은 가능하면 책에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서재 밖으로 나오면 우리는 당장 친구들하고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도 있고, 전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순식간에 알 수 있어요. 세상과 접속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는 서재도 역시 접속의 공간이지만 다른 성격의 접속이라고 생각해요.




자아가 확장되는 공간.

서재는 옛날 오래된 목소리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접속을 하면서 동시에 쉽게 만나기 힘든 타자를 대면하는 공간입니다. 사실 우리가 낯선 것을 가장 안전하게 만나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에요.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그런 목소리들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정말 피곤할 거예요. 거기에는 무시무시한 인간들도 있고, 독특한 캐릭터도 있고, 그리고 위험한 음성들도 많이 있거든요. 책은 하나하나가 다 타자이죠. 다 낯설어요. 그런데 책을 읽을 때는 가장 편안하고 정말 준비된 상태에서 낯선 목소리들을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그럼으로써 서재라는 공간은 자아가 확장해가는 공간인데, 그 확장은 자기와는 생각이 다른, 자기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또는 자기는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욕망들을 실현하는,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책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통해서 자아가 확대되는 거죠. 작은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거대해질 수 있는 확장성을 가진 공간인 것 같아요.


어릴 때 재미있었던 책을 다시 읽어 보세요.

제가 몇 년 동안 뉴욕에 있다가 돌아왔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뉴욕을 가기 전에는 지하철에서 최소한 사람들이 ‘메트로’ 같은 무가지(無價紙)라도 읽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몇 년 만에 돌아와 보니까 그런 무가지(無價紙)가 사라졌어요. 이제는 전부 스마트폰을 보고 있더라고요. 뉴욕에서는 아직도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전자 책이든 종이 책이든 책을 많이 봐요. 휴대폰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물론 뉴욕커들이 잘나서가 아니고요, 지하에서는 아무것도 안 터지기 때문이죠. 3G 네트워크 신호는 고사하고 전화도 안 돼요. 뉴욕커들도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오면 모두 다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이러거든요. 그래서 뉴욕도 ‘한국처럼 될 날이 멀지는 않았구나. 사람들이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고, 다른 것에 더 시간을 뺏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책이 줄 수 있는 독특한 경험들 때문이에요. 그걸 다른 것들이 대체하지 못하는 한, 그것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계속 갈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권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은 있어요. 간단해요. 자기가 어렸을 때 읽었던 재미있는 책 베스트 10을 한번 적어보는 거예요. 다섯 개만 적어도 좋아요. 그럼 동화책부터 여러 가지 책들이 있을 거예요. 아무튼 재미있게 읽었던 책 다섯 권 정도를 적어보는 거죠. 그리고 그 책을 다시 읽는 겁니다. 다시 읽어보면 대부분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다르네. 서두가 이랬었나?’ 그게 새로운 책을 읽는 것보다 놀랍도록 큰 어떤 발견의 기쁨을 줘요.


저도 가끔 벽에 부딪힐 때면 어렸을 때 읽었던 책, 또는 10년 전에 읽었던 책, 또는 지금까지 읽었던 책 베스트 10 같은 것을 한 번 적어 봐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한 번 들춰 보죠. 그러면 ‘내 기억이 상당히 왜곡돼 있었구나.’하고 전혀 색다른 의미에서 재미를 다시 느끼게 돼요. 그게 독서에 대해서 잃어버렸던 즐거움, 흥분, 이런 것을 되살려줍니다. 그런데 이걸 왜 권하는가 하면, 새 책은 실패할 확률이 큽니다. 서점에 가서 요즘 잘 나가는 책이라고 사서 봤는데 재미없으면 어떻게 해요. 그런데 어렸을 때 우리가 재미있게 봤던 책 다섯 권이나 열 권, 이 책들은 분명히 우리를 건드렸던 그 무엇인가 있어요. 그리고 다시 읽어도 분명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장담하는데,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서 ‘뭐야, 내가 생각한 것 그대로잖아. 지루해.’라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제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해봤는데, 다들 새삼스럽게 ‘깜짝 놀랐다’, ‘이 책이 이런 책이었다니’하는 반응이었어요. 그래서 나이가 든 자신의 변화 같은 것을 확인하고 싶거나 여러 가지 면에서 독서에 흥분이나 재미를 잃어버린 분들에게 제가 권하는 방법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가 추천하는 인생책


1. 오이디푸스 왕 / 소포클레스 저, 강대진 역/ 민음사/ 2009.08.21

2. 오디세이아 / 호메로스 저, 김원익 역/ 서해문집/ 2007.12.30

3. 에브리맨/ 필립로스 저, 정영목 역/ 문학동네/ 2009.10.15

4. 지구인/ 최인호 저/ 문학동네/ 2005.06.27

5. 만엔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저/ 박유하 역/ 웅진지식하우스/ 2007.06.25

6. 69/ 무라카미류/ 작가정신

7. 가면의 고백/ 미시마 유키오/ 문학동네

8. 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열린책들

9. 그리스 비극 걸작선/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숲

8.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도스토옙스키/ 열린책들

9.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현암사

10.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문학동네

11. 남쪽 계단을 보라/ 윤대녕/ 문학동네

12.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해냄출판사

13. 달려라 아비/ 김애란/ 창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소설가 김영하의 서재 - 김영하의 서재는 잠수함이다 (지식인의 서재)